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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

 

If you had

three wishes,

and

they all could come true.

 

 

눈을 떴다. 빼곡하게 박힌 별들로부터 온갖 색의 빛이 쏟아졌다. 잠에서 막 깨어난 그대로. 천을 말아 뒤통수에 댄 그대로 누워 하늘을 보았다. 모래바람이 불었다. 잘게 각진 모래들이 저들끼리 부딪쳐 사각대는 소리를 냈다. 너희는 또 어디의 돌을 깎아내는 중일까. 배가 고팠다. 먹지 못한 지 얼마나 지났더라. 바닥에 손을 댔다. 약간의 땀이 배어나온 손바닥에 누런 모래가 한가득 묻어났다.

 

또 버림받았다. 이제 그다지 낯선 일은 아니었다. 예쁘장한 얼굴로 주워져 허드렛일을 도맡다 알지도 못하는 새 남겨지는 것. 그래도 그 동안은 동전 한 닢이라도 쥐여 줬는데. 이번에는 자는 사이에 천막을 싹 빼 도망가 버렸다. 그냥 버리겠다고 하면 될 텐데. 굳이 그런 수고까지. 가족이라  사람들을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이제 어떻게 하나. 이 사막 한 가운데의 작은 오아시스에서 어떻게 먹을 것을 찾고 탈출해야 하나. 하는 생각 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거든.

 

암담한 생각에 잠이 모두 달아났다. 더 자는 것을 포기하고 근처의 대추야자에 기댔다. 모래바람이 할퀴듯 불어 베개 삼아 베고 있던 천이 바람에 날렸다. 아...! 급하게 손을 뻗으며 일어났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휘청한 다리는 몇 걸음 디디지 못하고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입 안으로 들어온 모레를 뱉어내며 돌부리를 뽑아냈다. 아니, 램프를.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램프는 비싸게 팔리는 법. 운이 좋네. 게다가 꽤 묵직하다. 잘하면 안에 기름이 들었을 지도. 그러면 기름까지 팔 수 있다. 그것도 마을까지 살아서 도착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이 사막에서 낙타 하나 없이 어떻게 이동할 수 있을까. 걷고 걷다 보면 언젠간 닿겠지. 다만 그가 굶어 죽는 것과 마을을 발견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의 문제는 있다.

 

램프의 뚜껑을 열었다. 기대하던 기름 대신 뿌연 안개가 가득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가득하던 빽빽한 밀도의 연기는 지훈에게로 와락 달려들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아니, 흩어지는 모양을 하다 다시 모였다. 또다시 짙어지고, 짙어지고, 짙어지더니, 결국.

 

"오, 안녕."

 

새하얗고 뽀얀 얼굴의 청년으로 나타났다. 램프의 요정 지니. 옛날 이야기 정도는 들어 알고 있다. 정말 있었구나. 지훈은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옷. 긴 팔다리를 쭈욱 뻗어 기지개를 켠 그는 벙찐 지훈의 얼굴 앞으로 바짝 제 얼굴을 댔다.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즐거운 건지 알 수 없는 표정. 그는 한없이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난 여기에 삼백년을 갇혀 지냈어."

"너..."

"쉿, 내가 말하고 있잖아."

 

하얀 얼굴의 그는 지훈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로질러 댔다. 보드라운 발간 뺨을 날렵한 손끝으로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난 말이야. 너무 화가 났어. 내가 이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게. 그는 양 손을 들어 지훈의 얼굴을 감쌌다. 그의 차가운 손은 지훈의 얼굴을 모두 가리기에 충분할 만큼이나 컸다. 처음 백 년은 해방해 주는 사람을 곱게 그대로 보내 주기로, 그 다음 백 년은 그를 최고의 부자로 만들기로 했어. 그런데 아무도 없더라? 내가 화가 났게, 안 났게? 맞아. 아주 화가 났어. 그리고 가장 최근의 백 년 동안 생각했어. 그 사람을 머리 끝 부터 잘근잘근 씹어먹기로 했어. 축하해, 소년.

 

그는 서늘한 눈을 똑바로 지훈에게 두고 조금씩 얼굴을 가까이 했다. 거리가 좁혀지며 기우는 고개. 얼굴의 솜털에 그의 숨이 닿을 만큼, 거의 키스라도 할 수 있을 만큼.

 

"너는 달아 보이는데. 어디 입 안에 굴려볼까?"

 

응? 청년은 그 차가운 손으로 지훈의 뒷목을 쓰다듬었다. 한껏 선정적인 겁주기. 지훈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만히 그를 바라볼 뿐.

 

결국 제 풀에 지친 그는 지훈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이쯤 하면 겁먹던데. 요즘 애들은 또 다른가. 조금 비뚤어진 터번을 고쳐 쓰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훈은 작게 심호흡 하고 말했다.

 

"세 가지 소원. 들어줘야 하는 거 알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지니의 주인이니까. 약속 안 지키면 죽지?"

 

린이라고 불러. 촌스럽게 지니라고 하지 말고. 그는 터번을 벗어 허공에 띄우곤 머리를 쓸어넘겼다. 겁을 잔뜩 집어먹고도 대범한 척. 지훈은 팔짱을 꼈다. 린은 지훈을 따라 팔을 교차했다.

 

"빨리 하고 끝내자. 자, 소원을 늘리거나, 무한으로 해 달라고 하거나, 감정을 조절하거나, 인간을 죽이거나, 뭐 하여튼 꼼수는... 야!!"

 

손가락 세 개를 펴들고 말하던 린에게로 쏟아지듯, 지훈은 쓰러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따뜻한 이불, 버석한 입술, 그리고 투덜대는 누군가의 말소리.

 

"대체 그렇게 쓰러지는 건 무슨 경우야?"

 

흰 옷의 요정은 지훈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본 지훈은 그곳이 아주 비싸 보이는 여관임을 깨달았다. 순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을 벙긋대다 간신히 말했다.

 

"근데 나, 돈 없어..."

"내가 냈어. 대체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데려온 거야?"

 

말하자면. 린은 어깨를 으쓱했다. 지훈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내려앉은 정적. 그 정적을 뚫고 지훈의 꼬르륵 소리가 퍼졌다.

 

"너 배고파?"

 

지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피나 부끄러움 같은 건 느끼지 않았다. 배가 고프다는 것으로 부끄러워 하기엔 너무나 오래 곯았던 탓이었다. 린은 방문을 나섰다가 이내 누군가와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 고소한 죽의 냄새도 함께.

 

군침이 절로 돌았다. 대체 얼마만에 맡아보는 음식 냄새인지. 죽 그릇을 받친 쟁반을 들고 온 콧수염의 사내는 끝도 없이 떠들었다. 이 죽에 무려 12가지의 허브를 넣었다는 둥, 저 분께서 깨어나시자 마자 드실 수 있도록 계속 지켜보고 만들었다는 둥. 지훈은 제 무릎 위에 올려진 죽으로부터 무럭무럭 솟아나는 김을 보다 린의 눈치를 살폈다. 끄덕이는 고갯짓. 지훈은 스푼을 들었다.

 

콧수염의 그는 지치지 않았다. 린이 그를 들처메고 나타나 가장 좋은 방으로 내놓으라고 호통을 쳤다는 것, 의사를 부르라 한바탕 난리였다는 것. 사실 죽을 삼키느라 잘 들리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그는 지훈이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상대도 아니었다. 다시 한 술, 죽을 입에 넣으며 그는 린에게로 힐긋 곁눈질을 했다. 그를 알게 된지는, 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얼마 지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표정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한 적대였다. 저 콧수염 인간이 뭔가 그의 심기를 거슬렸나, 지훈은 손짓으로 린을 불렀다.

 

"저 아저씨 뭐야?"

"몰라. 짜증나."

 

"나 소원 쓸게."

"지금?"

 

큼직한 나무 스푼을 한번 쭉 빤 지훈은 혀를 내밀어 입가에 묻은 죽을 핥았다. 동그란 스푼의 끝으로 낯선 이를 가리키며 린에게로 소곤거렸다.

 

"콧수염 아저씨. 이 방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해 줘."

"그게 소원이라고?"

 

"응."

"후회 안 해?"

 

안 해. 지훈은 그릇을 싹싹 긁어 마지막 한 입까지 모두 입 안에 넣었다. 린은 손가락 끝을 휘둘러 보이지 않는 힘으로 콧수염 남자를 몰아냈다. 깨끗하게 비운 그릇을 바닥에 내린 지훈의 앞으로 바짝 다가가 물었다. 너 혹시 미쳤어?

 

"배가 좀 고파서 그렇지 정신은 괜찮을 걸?"

"소원이 셋 뿐이라는 건 알아? 그렇게 막 쓰면 어쩌자는 거야?"

"네가 싫어하는 거 같길래."

 

"뭐?"

"네가 싫은 건 나도 싫어."

 

하, 린은 눈썹을 찌푸렸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지금껏 그를 요정으로 가졌던 사람들은 모두 똑같았다. 부자가 되게 해 줘. 왕이 되게 해 줘. 그런 것들은 익숙했다. 아니, 차라리 그런 소원이 편했다. 여러 번 해 보기도 했고.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하찮은 소원을, 그것도 퍽이나 어련히 알아서 할 자신 때문에 써버리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너 이 소원이 얼마나 큰 건지 몰라? 이거 하나면 세상을 망하게 할 수도 있어!"

"그런 건 나한테 중요하지 않아."

 

책에서나 나오던 이런 비상식적인 순수함. 아니, 아둔함? 린은 히히 웃는 지훈의 앞에 서서 그를 멍하니 보았다. 진짜 얘 뭐지? 생긴 건 똘똘하게 생겨놓고. 하얀 베개 틈에 잠기듯 누운 그는 예쁘게도 웃었다. 동그란 손끝을 모아 깍지를 끼며 말을 이었다. 넌 나한테 특별해. 중요한 건 그거지.

 

"나를 위해 무언가 지불한 사람도, 날 위해 화내주는 사람도 네가 처음이라서."

"내가 언제 너 때문에 화를 내는데?"

"지금."

 

순간 말문이 턱 막혀 매끈한 이마를 짚었다. 아, 골 때려. 린은 한숨을 푸욱 쉬었다. 침대의 푹신한 베개에 몸을 거의 파묻고 지훈은 킥킥거렸다. 나, 너 마음에 들어. 한가한 소리나 하긴. 린은 침대 옆의 안락의자에 기대앉으며 투덜거렸다.

 

"그렇게 쓸 데 없는 일에 소원 쓸 거면, 그냥 날 해방시켜."

"해방시키면 갈 거야?"

"당연하지! 내가 왜 너랑 있어야 하는데?"

"으음..."

 

지훈은 고개를 기울이며 곤란한 듯 웃었다. 이미 그에게서 관심을 꺼 버린 관린은 테이블 위의 낙타젖 푸딩을 퍼먹는 중이었다. 단 것을 좋아하나 보네. 모처럼 배가 불렀다. 침대는 푹신했고,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다. 다시 까무룩 잠들었다.

 

여관에서는 열흘 정도를 머물렀다. 알고보니 지배인이었던 그 뚱뚱한 턱수염 사내는 여전히 지훈의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지방 너머에서 지훈과 대화했다. 린은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복장이 터질 것 처럼 답답해 했다. 본인보다도 아까워 하는 게 재미있어서, 지훈은 별 일 아닐 때도 지배인을 불렀다.

 

"너, 두 번째 소원은 내 허락 받고 빌어."

"알겠어, 지니."

"지니 싫다니까!"

 

린은 지니라는 말을 싫어했다. 지니는 그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진 요정들을 통틀어 이르는 것이므로 따지자면 지훈에게 인간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간단하게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지훈은 종종 린을 지니라고 불렀다. 이유는 별다를 것 없었다. 그렇게 부를 때마다 눈썹을 씰룩이는 린의 표정이 재미있어서.

 

"두 번째 소원, 나를 사랑해줘."

"다시 말하지만, 소원을 늘리거나, 인간을 죽이거나, 사랑하게 하는건 할 수 없어."

"하지만 너는 인간이 아니잖아."

"할 수 없어."

 

치사해. 난 널 사랑한단 말이야. 하나도 진지하지 않은 고백을 하며 지훈은 웃었다. 그가 쓴 터번으로부터 천이 빠져나와 나풀거렸다. 지훈은 많이 웃었다. 하지만 타고나길 웃는 얼굴인가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모든 표정을 지워낸 얼굴은 한없이 냉정하고 곧아 보이는 편이었으니. 따지자면 그 웃음은 그의 보호색이었으니까. 창가의 난간에 팔을 베고 기대어 다시 생글생글 웃는 지훈의 얼굴. 별로 보고 싶지가 않았다. 난간 너머의 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 지니. 항상 내 곁에 있어 줘."

"네가 소원을 다 빌기 전까진 싫다고 해도 옆에 있을 거야."

 

소년은 대답 대신 웃었다. 또, 또 웃어. 건조한 모래 냄새가 밴 바람이 날아와 둘 사이를 뒤섞고 지나갔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둘은 여전히 여관의 장기 투숙객이었다. 떠돌이였던 지훈에게 집이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훈은 여전히 소원을 빌지 않았다. 그리고 소원을 빌 생각조차 않는 것 같았다. 사실 소원을 빌어야 하는 기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서둘러 해치우듯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낯선 태도에 초조한 것은 오히려 린이었다. 소원을 들어주는 쪽이 더 안달난 관계라니. 이거 좀 이상하잖아. 지훈이 누운 침대의 발치에 드러누운 린은 투덜대듯 말했다.

 

"이쯤 하면 두 번째 빌어도 되는 거 아냐?"

"네 허락 받고 하라며?"

 

아, 골 때려. 린은 다시 이마를 짚었다. 지훈은 집어먹던 사탕 조각들 중 하나를 골라 린의 입술에 댔다. 냉큼 입을 벌려 사탕을 우물대며 린은 한숨을 푹 쉬었다. 지훈은 키득대며 웃었다. 역시, 단 거 좋아해.

 

"그러면 내가 선택지를 줄게. 네가 골라."

"좋아."

 

크흠, 목을 가다듬은 린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입 안에 남은 사탕 조각을 씹어 삼켰다. 린의 안은 세 가지였다.

 

하나, 엄청난 부자 되기.

둘, 왕 되기.

셋, 최고의 미녀와 결혼하기.

 

자신만만한 얼굴로 그는 세개의 손가락을 펼쳤지만 지훈은 난처한 듯 뒷목을 긁적였다. 으음... 한참을 고민하다 동그란 손으로 린의 중지를 접었다.

 

"일단 미녀는 싫어."

"미녀 왜?"

"너 진짜 눈치없다."

 

지훈은 린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빤한 그 시선을 먼저 놓친 것은 린이었다. 크흠,

 

"왕도 싫어. 귀찮을 거야. 그리고 나같은 왕이라면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걸."                                                                             

 

아니라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순간 너무 공감한 나머지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지훈은 별 반응 없이 손을 들어 린의 두 번째 손가락까지 접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엄지. 동그란 주먹으로 그 엄지를 꼭 쥔 지훈은 웃으며 말했다.

 

"부자가 덜 싫네. 그걸로 할래."

 

린은 이를 뿌득 갈았다. '덜 싫어서' 부자가 되는 놈은 아마 너밖에 없을 거다. 그를 안아들고 황폐한 곳까지 날아갔다. 인적이 드문 척박한 땅. 린은 땅 한복판에 지훈을 잘 세워두고 다시 날아올랐다. 손에 달랑 램프 하나만을 든 채 그는 얌전히 서서 린을 보았다.

 

지휘하듯 움직이는 린의 긴 손끝을 따라 보드라운 대리석의 기둥들이 솟아올랐다.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에서 금과 비싼 돌들이 나타나 저택을 꾸몄다. 지훈이 선 자리를 따라 둥글게 바람이 불더니, 그 지나간 자리에 연못이 생겼다. 그 바람은 사라지지 않고 지훈을 휘감았다. 입고 있던 평범한 옷 대신, 린의 것과 비슷한 결 좋은 흰 비단의 비싸보이는 옷. 우와, 지훈은 몸을 돌려 스스로를 돌아봤다.

 

"봤지?"

"너 대단하네?"

"이제 드디어 네 첫 번째 소원이 아까워졌어?"

 

으음. 지훈은 곤란한 듯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린은 한숨을 푹 쉬곤 지훈의 머리 위로 터번을 푹 눌러 씌웠다. 됐다. 너한테  뭘 바라겠어.

 

재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게 얼마나 큰 것인지도 모르던 지훈은 처음으로 돈이 좋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진수성찬을 맛볼 때, 그의 즐거움을 위해 많은 것이 투자될 때. 특히 지금처럼, 연못에 발 담그고 신선놀음을 할 때.

 

린과 나란히 앉아 간식바구니의 사탕조각을 꺼내어 먹었다. 손이 끈적이는 게 싫다는 핑계로 린은 지훈의 손으로 받아먹기만 했다. 아, 린은 입을 벌렸다. 사탕을 달라는 신호, 지훈은 바구니를 등 뒤로 숨기며 웃었다.

 

"안 줄거야?"

"줄게."

 

지훈은 손에 잡히는 사탕 조각을 가져다 입술로 물었다. 가져가 봐. 턱짓으로 하는 도발. 린은 어처구니가 없어 허허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

 

"내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다시 지훈의 도발이 이어졌다. 린은 앉은 그대로 지훈의 입술로 돌진했다. 짧게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 지훈은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몸을 뒤로 뺐다. 화악 번진 홍조가 재미있어 푸하하 웃었다.

 

"사랑해 달라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뽀뽀 정도에 놀라기야?"

"사랑하니까 놀라는 거잖아."

 

중얼거리는 지훈의 말을 듣고서야 얼굴이 붉어졌다. 닿았던 입술이 뒤늦게 홧홧했다. 동그란 손으로 뒷목을 긁적이는 지훈의 귀가 붉었다. 야. 있잖아. 지훈은 고개를 들어 린의 눈을 보았다.

 

"이제, 사랑해 달라고 말하지 마."

 

지훈은 빙긋 웃었다.

 

린을 만난지 일년이 지났다. 4월의 사막은 어김없이 향기롭고 거칠었다. 선인장꽃이 피어나 퍼지는 미미한 단내가 지훈의 저택 곳곳에서 풍겼다. 안뜰의 정자에서 린의 무릎을 베고 누운 지훈은 배 위의 램프를 만지작거렸다.

 

"린. 자유의 몸이 되면 갈 거야?"

"음..."

 

린은 곤란한 듯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한 손에는 그의 손을, 다른 손에는 램프를 꾹 잡은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이 후회할 선택이 아니기를 바라며.

 

"그러면. 마지막 소원 빌게."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이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한 비구름.

 

"난 네가 자유의 몸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지훈이 들었던 램프가 강하게 진동했다. 차마 그 떨림을 견디지 못하고 램프를 놓아버렸다. 돌바닥과 부딪쳐 강한 소리를 내야 했을 그 램프는 사뿐히 닿아 모래처럼 흩어져 버렸다.

 

린은 순간 연기처럼 흩어져 하늘의 구름만큼이나 솟아올랐다. 지훈은 사라진 린의 흔적을 찾아 고개를 치켜올렸다. 우르릉, 소리를 내며 천둥이 쳤다. 지훈은 팔을 벌렸다.

 

지훈의 팔 사이로 무거운 구름이 쏟아졌다. 흰 옷의, 처음 보았던 그 날의 흰 옷의 관린은 지훈에게로 뛰어들었다. 그의 뺨을 잡고 입맞췄다. 통통한 입술에 몇 번이나, 그리고 또 몇 번이나 더 쪽쪽댄 후에야 그를 세게 껴안았다.

 

"네가 제일 달아!"

 

그렇게 해방된 램프의 요정 린은 그의 옛 주인이었던 알라딘 지훈과 함께, 가장 큰 성에서 가장 비싼 이불을 덮고 가장 좋은 음식을 먹으며,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HAPPILY EVER AFTER.

​알라딘 판윙

By ​라시솔 

PanWink's Wonderland

​판윙 동화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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