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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첫날은 아주 멋진 보름달이 뜨는 저녁이 되겠습니다. 모레까지 맑은 날씨가 계속될 예정입니다.]

 

비행하기 좋은 날씨를 담은 일기예보가 자고 있는 지훈의 귀에 꽂혔다. 지훈은 눈을 사르륵 떴다. 선선한 바람이 커튼을 넘어 볼 위에 앉았다. 지훈은 자신의 옆에서 아직 자고 있는 지지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지지, 오늘이야. 나만의 마을을 찾아 떠나는 날.

 

 

 

 

with each passing day

* 마녀배달부 키키 AU

 

 

 

 

 

 

 

 

관습적으로 마녀가 될 아이는 자신의 마을을 찾아나서야 한다. 아이는 새로운 마을에 머물며 마녀가 되기 위한 수행을 한다. 1년간 마을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생활을 마치면 진정한 마녀가 될 수 있다. 1년이면, 생각보다 금방 지나갈지도 몰라. 지지도 곁에 있고. 지지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으며 지훈은 싱숭생숭한 마음을 정리했다. 눈을 감으니 볼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바람을 타고 지훈의 분홍빛 머리카락과 검은색 옷자락이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냈다. 가성까지 섞어 노래를 부르던 지지가 갑자기 입을 닫았다. 지지는 지훈의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손을 툭툭 쳤다. 노래 좋았는데. 지훈이 눈을 살며시 뜨고 지지에게 다정한 눈빛을 보냈다.

 

“있잖아, 지훈은 어떤 마을에 도착하고 싶어?”

“으음 바다가 보이는 데를 찾을 생각이야.”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지훈이 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려 입을 열었지만 금방 다물렸다. 지훈은 머리 위에 떨어지는 촉촉한 감촉을 느꼈다. 톡, 톡, 톡. 지훈은 머리 위에 한 손을 얹었다. 손등으로 아까보다 확실한 감각이 느껴졌다. 지훈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맑은 날이라며. 몇 안 되던 빗줄기는 금방 불어났다. 거세게 오는 비가 지훈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와는 달리 지지는 침착하게 지훈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혹시나 해서 챙겨왔지.”

 

게다가 지훈 맞춤용이라구. 분홍색 우산이었다. 지훈은 눈을 찡그리며 웃었다. 한 손으로는 우산을, 다른 한 손으로는 빗자루를 잡고 하늘을 날았다. 지지는 아까 멈추었던 노래를 이어서 불렀다. 토독토독. 빗소리와 어우러진 지지의 노래는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노랫소리에 맞춰 이리저리 날다보니 뺨에 습기가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도착한 거 같은데?”

 

응, 그런 거 같아. 헤엄치는 마녀들이 사는 마을에.

 

 

관린은 언제나처럼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한쪽 턱을 괴고 있던 관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분홍색 동그라미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관린은 알이 없는 안경까지 고쳐 쓰며 하늘을 다시 자세히 바라보았다. 분홍색 우산을 쓰고 하늘을 날고 있는 분홍색 머리의 남자아이였다. 관린은 급하게 우산꽂이에 있는 분홍색 우산을 꺼냈다. 창문을 열고 우산을 핑그르르 돌렸다. 일종의 신호였다. 여기로 와달라는. 그것이 통했는지 지훈은 관린의 빵집 앞에 착지했다.

 

“혹시 따로 가야할 곳이 있는 거야?”

“그건 아닌데….”

 

지훈은 문장의 끝을 뭉개며 옆머리를 긁적였다. 관린은 급하게 문가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비도 오는데. 괜찮으면 들어올래?”

 

지지가 먼저 관린의 빵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 우리 집에도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내고 있어. 때마침 미미가 문가로 다가왔다. 지지는 눈을 크게 뜨고 멈춰 있다가 미미를 향해 뛰어갔다. 미미와 지지의 첫 만남이 이뤄지는 동안, 지훈은 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빗줄기에 가려 일기예보에서 들었던 보름달은 보이지 않았다. 고소한 냄새에 고개를 돌리니 환하게 웃는 뽀얀 관린이 보였다. 내가 만날 보름달은 너였나 봐.

 

 

“마녀였구나. 그래서 하늘을 날았던 거고.”

 

응. 지훈은 대답과 함께 코코아 잔속으로 얼굴을 묻었다. 따듯한 김이 피부에 와 닿았다. 관린. 응. 지훈의 부름에 응답하는 관린의 목소리는 더욱 깊게 지훈에게 와 닿았다. 지훈은 이제야 새로운 마을에 도착한 것이 실감났다.

 

“사실 나, 머무를 곳이 필요해.”

“그럼 우리 집에서 지낼래? 우리 집에 빈방이 있으니까 써도 돼.”

 

정말? 조심스레 꺼낸 지훈의 말에 관린은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었다. 응, 정말. 지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관린, 넌 최고야.”

 

지훈보다 먼저 지지가 환호성을 질렀다. 지지가 관린의 목에 올라갔다. 관린은 지지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정말, 지지. 관린은 최고야. 밖은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지만, 지훈의 마음속은 일기예보대로 맑았다.

 

“그럼 우리 마을에서는 어떤 일을 하면서 지낼 거야?”

“배달. 난 하늘을 나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와아 ‘하늘을 나는 배달부’인 거잖아.”

 

관린의 감탄에 지훈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평소라면 또 부끄러워하기는- 하고 놀렸을 지지는 어느새 미미 곁에 가 있었다. 지지는 미미와 친해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너는 마을에서 무엇을 하고 지내?”

“나? 하늘 보는 일.”

 

아. 그러니까 날 봤겠구나. 웃지도 않고 진지하게 납득하는 지훈에 관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훈은 영문도 모른 채 관린을 따라 웃었다. 관린을 입을 가리던 손으로 지훈이 들고 있는 빵을 가리켰다.

 

“지금 너가 먹고 있는 거 만드는 일.”

“응?”

“아까 했던 말은 농담이었어.”

 

 

그렇지만 농담 같지 않았는걸. 관린은 주중에 빵을 만들고, 주말에 그림을 그렸으며, 일주일 내내 하늘을 바라봤다. 지훈은 주중에 배달을 하지 않을 때는 관린을 도왔고, 주말에 관린이 그림 그리는 것을 지켜봤다.

 

“너 진짜 잘 그린다.”

“제대로 그린 것도 없는데?”

“그래도 잘 그렸어.”

 

관린은 연필을 잡고 피식 웃었다. 지훈은 관린이 연필로 그어놓은 몇 개의 선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근데 나 요즘 슬럼프 왔어.”

 

지훈은 그림에서 시선을 거두고 관린과 눈을 마주쳤다. 지훈의 잔잔한 눈빛에 관린은 입을 열었다.

 

“내가 좋아하는 하늘의 느낌을 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할 지 모르겠어.”

 

관린은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훈도 관린이 시선을 두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름이 언제나처럼 천천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느낌까지도 그려내고 싶은데.”

 

관린은 한쪽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전까지 지훈이 보던 관린의 보조개는 행복이 남긴 흔적이었다면, 이번에는 깊은 고민이 갈아낸 흔적이었다. 으음. 관린 대신 지훈은 긴 고민의 소리를 밖으로 내었다.

 

“너만의 하늘을 그려보는 건?”

“나만의 하늘?”

“응. 꼭 그대로 그릴 필요는 없는 거잖아.”

 

너가 받은 느낌대로 그리면 되지 않을까. 지훈은 부드럽게 문장을 말해주고는 미소를 지었다. 천천히 변하는 지훈의 얼굴에 관린은 방금까지 보던 풍경이 겹쳐보였다. 관린은 가만히 지훈을 바라보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지훈. 처음 하늘을 날 때, 어땠어?”

“아주 어릴 때라 기억은 나지 않아. 하지만 그때 사진을 보면, 적어도 두려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활짝 웃고 있거든.”

 

활짝. 입꼬리를 위쪽을 향해 손으로 길게 늘이며 지훈이 말했다. 근데…. 근데?

 

“지금은 그때만큼 하늘을 나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아.”

 

지훈이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관린은 지훈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지훈의 옆모습만 바라봤다.

 

 

 

 

 

“지지, 나 이제 너가 노래 안 부르면 심심해.”

“어? 아 내가 노래 안 부르고 있었구나.”

 

요즘 왜 그런담. 지훈은 입을 꾸욱 다물고 눈을 치켜떴다. 지지는 지훈을 신경도 쓰지 않아서, 지훈은 제풀에 웃고 말았다. 지지가 부르는 노래에 맞추어 하늘을 날았다. 평소와는 다른 움직임이었다. 아래로 쳐지는 무거운 느낌. 아무튼 이상해.

 

지지의 음악을 집중해서 듣다보니 금세 목적지에 다다랐다. 띵동. 벨소리가 경쾌했다. 지훈이 발뒤꿈치를 들었다 올렸다하는 행동을 몇 번을 반복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띵-동. 띵-동. 세 번째 벨소리가 울리자마자 급하게 문이 열렸다.

 

“저, 배달 의뢰를 받은 마녀 지훈입니다.”

“늦게 열어드려서 죄송해요. 들어오세요.”

 

집 안의 부엌으로 이끈 여자는 지훈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한 일이 하나 더 있어요.

 

“배달을 맡기려 했던 요리가 아직 완성이 되질 않았어요. 오븐 온도가 더 올라가면 좋은데.”

“아….”

“손녀의 파티에 따뜻한 요리를 보내주려고 했는데. 내 자랑거리인 요리, 소금 오븐구이 치킨. 하지만 포기해야겠네요. 괜히 헛걸음을 하게 해서 미안해요. 약속한 것만큼의 사례는 할게요.”

 

지훈은 멍하니 여자 뒤의 오븐에 시선을 두다, 부엌에 오븐이 한 개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관린을 도울 때 많이 보던 모양의 오븐이었다.

 

“저 오븐은 쓰지 못하나요?”

 

아. 여자는 지훈이 가리킨 오븐 앞으로 갔다. 주변의 벽을 만지며 여자가 말을 이었다.

 

“옛날에는 이걸 많이 쓰곤 했는데. 쓰지 않은지 오래 되어서….”

“장작을 때는 오븐이라면 도와드릴 수 있어요.”

“괜한 부탁하는 거 아닐까 모르겠어요.”

“아니에요. 저 오늘 이게 마지막 배달이에요.”

 

그럼 부탁할게요. 지훈은 여자가 알려준 창고로 가 장작을 날랐다.

 

“오 지훈. 관린한테 금세 배웠네?”

 

지훈은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이려고 했으나, 한 번에 많은 장작을 든 탓에 그러진 못했다. 대신 부끄러운 듯 웃었다.

 

“내가 도와드릴 수 있으면 도와드려야지. 배달을 성공시키는 거, 내 의무잖아.”

 

지훈은 가져온 장작을 오븐에 넣고 불을 지폈다. 여자가 적당한 온도가 된 것 같다고 판단하자 치킨을 넣었다. 여자는 지훈에게 쉬라고 차를 내주었지만, 지훈은 여자가 중간중간 치킨을 뒤집는 것을 도왔다.

 

 

골고루 익은 치킨을 꺼내자 맛있는 향이 진동했다. 흐으음. 지훈이 본능적으로 콧소리를 내었다. 여자가 웃으며 한 마리를 건넸다. 지훈이 사양을 하다가 여자의 끈질긴 권유에 결국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조심스럽게 입을 움직이던 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아. 이거 대박이에요.”

“그러니까 내 자랑거리죠.”

 

박지훈, 엄청 좋아하네. 지지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지훈은 그 자랑거리를 들고 여자의 손녀가 파티를 여는 곳으로 갔다.

 

띵동. 여자네 집의 벨소리와 비슷한 느낌이 났다. 벨소리가 닮았다. 지훈은 혼자 실없는 생각을 하고 웃었다. 왜, 또, 뭐가 웃긴데? 지지가 말을 툭툭 내뱉자 바로 문이 열렸다.

 

“배달 왔어요. 마녀 지훈입니다.”

“할머니께 연락받았어요. 무거우셨을 텐데, 고생하셨어요.”

“아니에요. 아, 영수증에 싸인 해주세요.”

 

손녀가 웃으며 싸인을 했다. 감사합니다. 지훈은 그 미소에 뿌듯함을 느꼈다. 치킨 도착한 거야? 집 안에서 손녀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손녀에게 인사를 하고 빗자루를 타고 떠났다. 와아. 실제로 보니 더 신기하네. 여자가 짧게 감탄을 했다.

 

 

“빵을 굽고 하늘을 바라보는 관린. 자랑거리를 손녀에게 보내는 고객분.”

“엥? 뜬금없이?”

“다들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하는데. 나는….”

 

지훈은 푹 고개를 숙이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지훈의 모습에 지지는 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배달일 열심히 하잖아.”

“나는 의무감뿐이고 열정은 없어.”

 

지지는 말없이 앞발을 지훈의 손 위에 얹었다. 따듯한 몸짓에 지훈이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둘은 조용히 비행을 했다. 관린의 빵집 앞에 도착하자 지훈의 눈에 손님이 선물로 준 장식이 가장 먼저 보였다.

 

「배달합니다. -지훈」

 

배달합니다, 지훈. 지훈이 자신이 나는 모습을 담은 장식 밑에 적힌 글자를 작게 소리 내었다. 지훈, 안 들어오고 뭐해? 안경을 쓰지 않은 관린이 문가에 기대어 서있었다.

 

“별 거 아니야.”

 

지훈은 황급히 빵집 안으로 들어섰다. 관린은 잠시 문의 손잡이를 잡고 지훈이 방금까지 시선을 두던 곳을 바라봤다. 지지는 관린이 문을 닫을 때까지 그를 쳐다보다가 미미에게로 뛰어갔다.

 

 

 

“지지, 아무리 좋은 반려가 생겼다고 해도, 식사시간은 지켜줘.”

“야옹.”

“뭐야, 진짜 고양이 같은 소리를 다 내고.”

“야-옹.”

 

지지는 다시 길게 소리를 내고는 창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휴, 아무튼.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관린이 준 빵을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쎄한 기분에 급히 빗자루를 꺼내들었다. 설마. 지훈은 눈을 꾹 감았다 뜨고 빗자루를 탔다. 정말 빗자루 위에 몸을 얹고 있기만 했다. 공중에 몸이 떠지지 않았다. 지훈은 방 안의 공기가 전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법이 약해졌어.

 

 

“날 수가 없다고?”

“응.”

 

나는 수행 중인 마녀야. 마법이 약해지면, 나는, 나는,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거 아닐까. 지훈은 관린 앞에서 울지 않으려 주먹을 꽉 쥐었다. 관린은 떨리는 지훈의 주먹을 보면서도, 섣불리 그 위에 손을 얹지를 못하였다.

 

 

지훈이 빗자루를 들고 멍하니 서있는 날이 많아졌다. 무릎은 언덕에서 굴러 생긴 상처 투성이였다. 대화를 할 수 없게 된 지지와도 멀어졌다. 지훈은 지지가 챙겨온 구급상자에서 약을 꺼내 상처에 발랐다. 따갑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똑똑. 지훈이 약을 넣은 구급상자를 닫는데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고깔모자를 쓴 관린이 있었다.

 

“생일 축하해, 지훈.”

 

관린이 지훈에게 고깔모자를 씌우고 분홍색 풍선을 건네주었다. 헬륨을 넣지 않고 직접 분 풍선인지 위로 뜨지 않았다. 풍선을 자세히 보니 지훈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내려와 있는 앞머리, 물결을 담은 눈꼬리, 지지의 귀를 닮은 코, 앞으로 누운 ‘3’ 모양으로 다물어져 있는 입. 우와. 지훈이 감탄을 하자, 관린이 노래를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관린이 보다 크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노래를 이었다.

 

“사랑하는 지훈, 생일 축하합니다.”

 

쨘. 관린이 케이크 상자를 지훈에게 들어보였다.

 

“손녀에게 자신의 자랑거리를 보낸 고객분 기억나? 나한테도 신나서 이야기해줬었잖아.”

 

지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관린이 케이크를 지훈의 눈높이에 맞춰 들어보였다.

 

“그분이 새로운 자랑거리라고 보내주셨어.”

 

상자를 열자 초코케이크가 나왔다. 케이크 위에는 관린의 빵집 앞에 걸려있는 장식과 똑같은 모양의 그림이 생크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하늘을 나는 배달부, 지훈. 그렇지만 저는 지금 하늘을 나는 배달부가 아닌걸요. 지훈은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얼굴을 했다.

 

“나중에 감사인사 드려야겠다.”

 

관린은 지훈의 표정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케이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지훈이 관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관린이 급하게 말을 꺼냈다.

 

“어, 바다 구경 가지 않을래?”

 

그러고 보니 지훈은 일을 하거나 관린을 도와주느라 바다를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다. 지훈은 케이크를 챙겼다.

 

“다른 음식 챙겨갈까?”

“아니. 따끈따끈할 때 먹어야지.”

 

지훈은 관린의 자전거 뒷좌석에 탔다. 관린이 자전거를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바람이 지훈의 볼을 건드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네, 이 기분. 그렇지만 비행할 때와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지훈은 눈을 세게 감으며 관린의 허리를 더욱 꽉 잡았다. 관린은 길게 숨을 참았다 짧게 숨을 내쉬며 바다까지 자전거를 몰았다.

 

 

지훈의 발에 눌리는 자갈의 느낌이 부드러웠다. 아침에 보는 바다는 관린의 물감에서만 보던 색깔이었다.

 

“관린, 너가 하늘 그림 그릴 때 저런 색깔 사용하잖아.”

 

지훈이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응, 그러네. 하늘이랑 같은 색이네. 관린이 눈을 접으며 웃었다. 자세히 보니 바다에는 하늘이 비치고 있었다. 살짝 보이는 바다 속 물고기를 보며 지훈은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 안녕, 즐겁게 헤엄치는 마녀들. 관린과 지훈은 오랫동안 하늘과 물고기를 담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세게 부는 바람에 종이가 펄럭이는 소리가 났다. 관린의 옆에 놓인 스케치북이 넘겨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스케치북 들고 온 거야? 역시…”

 

열정이 대단하네- 라고 말하려던 지훈은 급하게 입을 닫았다. 애써 거둔 우울함이 다시 밀려왔다.

 

“아니야. 그림을 그리려고 가져온 게 아니라 지훈 보여주려고 가져왔어.”

“응? 내가 너 그림 그리는 거 매번 봤잖아?”

“지훈이 못 봤던 그림들이 있어.”

 

관린이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지훈은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관린이 건넨 스케치북을 받았다. 첫 장에는 관린과 지훈의 첫 만남이 그려져 있었다. 분홍색 우산을 들고 있는 분홍색 머리의 지훈. 처음 봤을 땐 분홍색 동그라미가 하늘을 떠다니는 줄 알았어. 옆에서 들리는 관린의 말에 지훈이 피식 웃었다. 분홍색은 지훈에게 의미 있는 색이었다. 지훈은 온통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마녀는 되고 싶지 않았다. 홀로 염색약을 사서 분홍색으로 염색한 머리는 그에 대한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지훈의 부모는 기겁을 하며 다시 머리를 검은색으로 되돌려놓으려 했었다. 지훈은 다시 검은색 머리가 되어야 한다면 마녀 옷이나 빗자루를 무지개 빛깔로 칠하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얻어낸 머리였다. 그 후에도 지훈은 최대한 분홍색을 가진 물건들만 곁에 두려했다.

 

“분홍색 동그라미 아직도 여기 있는데?”

 

지훈이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관린은 그 위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놓았다.

 

“응. 검은색들 속에서 빛나고 아주 사랑스러운 분홍색 동그라미.”

 

관린은 본능적으로 지훈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려다가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지훈은 스케치북의 다음 장을 넘기고 있었다. 휴우. 관린은 지훈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훈은 스케치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오븐으로 치킨을 구울 때의 자신, 치킨을 한 입 먹어보고 눈이 커지는 자신, 배달을 하기 위해 초인종을 누르는 자신. 스케치북을 넘길 때마다 자신조차도 소중하지 않게 여겼던 감정을 표현하는 ‘지훈’이 있었다. 관린한테 배운 오븐 사용법으로 고객을 도와드릴 때의 대견스러움, 그렇게 만든 치킨이 맛있었을 때의 기쁨, 물건의 주인에게 물건을 안전히 전달해주었을 때의 뿌듯함. 이런 감정을 느끼는 일을 하면서 받는 감사 인사. 지훈은 고객으로부터 받은 케이크를 다시 보았다. 지훈은 이제야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의무감에 가려져 있던 자신의 열정을 찾을 수도 있었다. 관린아, 고마워.

 

“우리 같이 케이크 먹을래?”

 

관린은 접시 두 개를 꺼내서 지훈과 자신의 앞에 두었다. 지훈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으음.

 

“관린아, 네 접시에는 케이크 담지 마.”

 

관린이 의문스러운 눈으로 지훈을 바라봤다. 지지가 있었다면 먹는 거에 욕심 그만 좀 부려- 라고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게 아니야. 지훈은 케이크를 크게 베어 물었다. 지훈의 입 주위에 잔뜩 케이크가 묻었다.

 

“여기. 여기에 있는 거 먹어.”

 

관린이 입을 가리고 끅끅댔다. 아앙 빨리이. 관린은 지훈에게 다가가 입 주위에 묻은 생크림을 핥았다. 애태우는 관린에 지훈이 입을 쭈욱 내밀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관린은 지훈의 입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결국 지훈이 관린의 볼을 잡고 제대로 입을 맞추었다. 케이크는 입에 대지도 않은 관린의 입 주변도 케이크가 잔뜩 묻었다. 관린과 키스를 하면서 지훈은 자신이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마녀’ 지훈이 아닌, ‘지훈’으로.

 

 

 

“여보! 지훈에게서 온 편지에요!”

“정말이에요?”

 

펑. 엇. 지훈의 부모가 단골손님을 위해 제조하던 약이 폭발을 일으켰다. 아이구.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겠네요. 그래도 일단 편지 읽어봐요. 지훈의 부모는 편지봉투가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히 편지지를 꺼냈다. 편지지에는 분홍색의 작은 스티로폼공이 하트 모양으로 붙어 있었다.

 

[부모님, 안녕하세요? 저도, 지지도 잘 있습니다. 배달 일도 재밌게 하고 있어요.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저는 이 마을이 좋습니다. 이렇게 예쁜 편지지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요.]

with each passing day

By 떼떼떼뗴

PanWink's Wond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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